종로3가는 충무로와 함께 오랫동안 국내 영화 소비의 중심지였습니다. 그곳에는 단성사와 피카디리, 그리고 서울극장이 있었습니다. 영화 하나를 한 곳에서만 상영하던 1990년대 '단관 상영' 시절, 극장 앞은 티켓을 사기 위해 줄을 선 관객들로 북적였습니다.
요즘 관객들은 극장 앞에 줄을 서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을 꺼내 언제든 가까운 대형 멀티플렉스의 빈자리를 예약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근래에는 그나마 극장을 가는 발길도 뜸해졌습니다. 코로나19 탓도 있지만 '손안의 극장'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종로3가의 극장들도 변했지만, 경쟁력을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단성사는 2008년 부도를 겪고 역사 영화관으로 바뀌었고, 피카디리는 2004년부터 롯데시네마를 거쳐 CGV에 운영권을 넘겼습니다. 홀로 종로3가를 지켜왔던 서울극장마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을 이유로 42년 만에 문을 닫습니다.
■ 스크린 1개로 시작해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로 성장
1978년 9월 17일 한국 영화 '마지막 겨울'을 첫 상영작으로 문을 연 서울극장은 스크린 1개로 시작했습니다. 제작사 합동영화사의 고(故) 곽정환 회장이 재개봉관이었던 세기극장을 인수해 개봉관으로 위상을 굳혔고, 스크린을 늘려 모두 11개 관을 갖추면서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로 성장했습니다.
80·90년대 한국 영화 부흥기에는 단성사, 피카디리, 허리우드, 스카라, 국도극장, 대한극장 등과 함께 문화중심지로 명성을 누렸습니다. 종로 극장가가 쇠퇴하면서는 최신 개봉작들뿐만 아니라 여러 독립·예술 영화들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상영하며 예술 영화관으로 영역을 확장해왔습니다. 미쟝센단편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등 작은 영화제들의 개최 장소로도 활용됐습니다.
하지만 대기업이 운영하는 멀티플렉스에 밀려 수익성이 나빠졌고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결국 서울극장은 지난달 영업 종료 공지를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 8월 31일까지 '고맙습니다 상영회'…선착순 무료 티켓 제공
서울극장의 마지막 인사는 '고맙습니다 상영회'입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지난 11일부터 영업 마지막 날인 오는 31일까지 3주 동안 평일 하루 100명, 주말 하루 200명에게 선착순으로 무료 티켓을 제공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모가디슈' 외에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틸다 스윈턴 주연의 '휴먼 보이스', 지난해 칸영화제 공식 선정작 '러브 어페어: 우리가 말하는 것, 우리가 하는 것' 등 하반기 개봉 예정작 4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서울극장의 기획전에서 누락 된 명작 영화들도 다시 상영됩니다.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폭스 캐처'를 비롯해 '프란시스 하', '걸어도 걸어도', '플로리다 프로젝트', '서칭 포 슈가맨', '흐르는 강물처럼' 등이 관객을 만납니다.
합동영화사와 서울극장 설립자인 고(故) 곽정환 회장이 연출하고, 고은아 현 회장이 주연한 '쥐띠부인'(1972)은 서울극장의 역사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특별상영됩니다.
서울극장을 운영하는 합동영화사는 영화관의 문은 닫지만, 영화에 국한되지 않은 콘텐츠 투자 및 제작과 새로운 형태의 극장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극장 건물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격변하는 시대 흐름 속에서 관객과 숨 쉬며 감동을 나누었던 서울극장은 관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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